샤이닝위저드 21화

2020-03-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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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이자의 말하는 속도와 발음은 웬만한 정신공격마법보다 더욱 강렬한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라크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제임스의 뒤쪽 봉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저건 누구지요?”

“응? 앗, 설마 벌써?”

제임스는 기겁을 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수풀이 우거진 산봉우리뿐, 사람은 없었다.

“뭐야? 놀랐잖아! 윽.”

-털썩

속았다고 생각한 제임스는 화를 내려고 다시 라크를 보다 신음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어느 새 라크의 왼손에는 파란 빛을 내는 투명한 단검이 들려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모르는 사람과 함께 갈수는 없습니다.”

라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발쪽을 보았다. 이미 두 개의 달이 환하게 떠 있는데 그의 몸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거의 그늘 속으로만 다니고 해가 난 곳으로는 거의 가지를 않는다.

왜 그러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쑥스러운 듯 웃으며 대답한다.

“난 피부가 약해서, 햇빛을 받으면 금방 타거든.”

그 말에 보통 사람들은 구역질 하는 시늉을 하며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 더 라크와 오래 있었던 사람들은 그 말이 진짜라고 믿는다. 그 정도로 라크는 철저하게 그늘로만 다니는 것이다.

그런만큼 보통 이동을 하거나 할 때에는 거의 들키지 않지만 이 남자처럼 추적술을 익히거나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자라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물어온다면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임스란 남자에게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갑자기 친한 척 하는 제임스의 심중 뒤편에는 무엇인가 음흉한 의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행복한 꿈을 꾸십시오.”

라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기려다 잠시 멈칫하고는 다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정도 되는 남자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넘어간 거지?”

아무리 라크의 움직임에 전혀 기척이 없다고 해도 제임스가 온 신경을 뒤에 쏟지 않았다면 기습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제임스는 뒤에서 무서운 적이 쫓아오는 것처럼 반응했다.

‘뭐, 내가 모든 일을 알 필요는 없지.’

라크는 곧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방해가 들어와 이미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소모되었다. 새벽이 되기 전에 이곳으로 돌아오거나 봉우리 건너편으로 갈 생각이었으므로 서둘러야 했다.

* * *

스틸문의 용병길드장 카슈는 벌써 2일째 산을 뒤지고 있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산의 나무 하나하나와 땅에 있을지도 모르는 흔적들을 찾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마른 고기조각과 맹물만을 먹으면서!

“으윽, 이 짓도 오랜만에 하니 힘들군.”

그는 혀를 차며 스스로를 한탄했다. 용병길드장 노릇을 하면서 실무를 뛰지 않았더니 몸이 녹슬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제임스를 쫒아오면서 많은 단련이 되었다. 이제는 거의 전성기 때의 체력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라크란 마법사도 보통이 아닌데? 산속을 며칠 동안이나 걸으면서도 전혀 속도가 늦어지지 않았군.”

그는 다시 땅바닥에 꺾여 있는 들풀을 발견해 내고는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단련된 사람이라고 해도 하이얀 산맥의 산줄기를 따라 이동하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요소요소에 관문이 생겨나 왕국사이를 사사로이 오가지 못하게 막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법사 혼자 이런 험하고 위험한 지역을 나아가고 있다. 보통 마법사가 아니란 소리였다.

‘하긴, 시르카님이 찾을 정도니까.’

슈카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숙여 풀의 꺾인 부분을 살폈다. 아직 수액이 말라붙어 있지 않았다. 꺾인 윗부분도 생기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라크가 이곳을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좋아!”

카슈는 오늘이야말로 라크를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면서 서둘러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까지의 흔적을 보아 상대는 동쪽을 향해 거의 일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제임스를 쫒던 카슈가 추적의 방향을 바꿔 라크를 먼저 찾기로 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그때 카슈는 제임스가 만들어놓은 속임수에 넘어가 늪지대에 들어가 헤맨 뒤였다. 여러 가지 동물들이 빠져 죽어 썩어가는 늪의 물들은 냄새도 독했고, 일단 피부에 묻으면 가렵기까지 했다. 카슈는 겨우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늪지대에서 나왔지만, 그 때에는 이미 만 하루가 지나 있었다.

“죽인다! 단칼이 아니라 꼭 여러 번 칼질을 해서 끝장을 낸다!”

카슈는 맑은 하늘에 대고 그렇게 울부짖었다. 나이든 용병이 하기에는 약간 유치한 대사였지만 그의 분노는 체면을 잃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카슈는 중요한 것을 알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추적술은 제임스를 따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제임스란 놈은 사정이 있어 용병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가이안 제국에서도 최고의 무력집단 중 하나인 포레스트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장래를 촉망받는 레인저였고, 그 사건이 터지지만 않았다면 10년쯤 후에는 기사단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할 만큼 실력이 있었다. 그러나 사건은 터졌고, 그는 죽은 사람 처리가 되었다.

검으로라면 카슈에겐 안 되겠지만, 야외에서의 추적술이라면 대륙에서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카슈는 결단을 내렸다. 제임스를 쫒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이번엔 늪지대가 아닌 화산지대로 유인당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론은 목적지에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시르카가 찾는 것은 라크이다. 그리고 제임스는 시르카를 쫒아갔다. 원래는 제임스가 시르카를 찾기 전에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고 그들이 만나는 것까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지 시르카와 제임스가 라크를 찾아내는 순간, 그곳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자신이 제임스를 제압하면 되는 것이다.

그 뒤로는 여정이 훨씬 쉬워졌다. 라크란 자는 가끔씩 흔적이 사라지기는 해도 움직임이 일정했다. 그리고 이상한 곳으로 가지도 않았다.

‘두고 보자, 제임스! 네놈이 라크를 찾는 순간이 바로 제삿날이 될 것이다!’

카슈는 이를 갈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카슈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사실 제임스도 시르카를 쫒다가 그 흔적을 놓쳤다. 숲의 마법사를 숲속에서 추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제임스는 어쩔 수 없이 라크를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최대의 속도로 라크에게 접근해 갔다.

‘음, 이것은?’

한참 서둘러서 달리던 카슈는 바닥에 나 있는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급히 걸음을 멈췄다. 이미 해는 졌고, 밤이 되었지만 그는 야간시력을 확보하는 수련을 했기에 사물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이렇게 빨리 라크에게 다가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발자국은 보통사람에게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흐렸지만 캬슈와 같은 전문가에게는 아주 확실하게 보였다. 특히 지금의 발자국은 단순히 걸음을 옮기며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멈춰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이라 더욱 진했다.

‘이곳에서 무엇을 본 거지?’

카슈는 라크가 선 자리 옆에 있는 바위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모든 나무가 말라 죽어 있는 봉우리를.

“저곳인가? 저곳으로 간 모양이군.”

카슈는 서둘러 일대를 뒤져 흔적을 찾았다. 아니다 다를까, 라크의 흔적은 그 봉우리로 이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아래로 내려가니 누군가가 서둘러 달려 내려간 흔적도 보였다.

‘응, 이것은!’

카슈의 눈이 빛났다. 발자국의 크기를 보아 제임스의 것이 틀림없다!

“이놈!”

카슈는 이를 갈며 달리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파파파팍

어둠으로 가려진 산길을 카슈는 평지를 달리는 전투마처럼 거침없이 달렸다.

얼마 안 있어 카슈는 계곡을 지나 그가 보았던 봉우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땅에 쓰러진 제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놈! 제임스! 죽어랏!”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한이 서린 액센트를 넣으며 카슈는 제임스를 향해 달려갔다. 어느새 뽑힌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사방을 환하게 밝혔다. 데이라이트(DayLight)라는 검의 이름답게 정말로 밝은 빛이었다.

그런데 막상 제임스의 앞까지 달려간 카슈는 갑자기 차갑게 식은 표정이 되어 제임스를 보았다.

“잠들었군.”

-쿡쿡

검 끝으로 제임스를 찔러 보았다. 날카롭게 그지없는 검에 찔린 제임스의 엉덩이에서는 두 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제임스는 깨어나지 않았다.

“라크란 자에게 당한 것인가?”

마법으로 잠든 것이 틀림없다. 잠시 제임스를 노려보던 카슈는 한숨을 내쉬고는 밧줄로 그를 묶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제임스의 몸을 깔고 앉은 채 배낭에서 마른 고기조각과 물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식사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식사도 끝나고 마음도 완전히 안정된 카슈는 하늘을 보았다. 두 개의 달이 이미 한쪽으로 기운 것이 새벽까지 한두 시간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사방을 둘러보니 라크란 자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흙인데도 발자국이 없었다. 하늘을 날아서 간 것인지도 모른다.

“흠, 제임스가 당할 정도라...”

흔적을 보건데 거의 저항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상대이다. 그러고 보니 시르카가 왜 그를 찾는지도 알지 못한다. 분위기를 보아 적은 아닌 것 같았지만 장담을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제국 용병길드의 젊은 에이스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했다고 소문이 나면 영업에 차질이 생기겠지.”

카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발로 제임스의 얼굴을 밟아 비볐다.

“음음, 음냐.”

“좋으냐? 이 녀석, 멍청하게 당하고도 웃는 놈이.”

카슈는 기가 막혀 중얼거렸다.

붉은 흙이 제임스의 코와 이마에 묻었지만 그래도 제임스는 깨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뭐가 그리 좋은지 혀를 다시며 웃고 있었다.

카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신의 기를 날카롭게 가다듬고 데이라이트(Daylight)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뺐다 하면서 근육을 이완시켰다.

어느덧 동쪽 하늘이 밝아 오는 것이 곧 완전히 날이 밝을 것 같았다. 카슈는 이제 거의 뚜렷하게 보이는 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돌아올까? 오면 대화 좀 해야지. 라크 경.”

그의 말속에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김운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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