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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게임, 여성 상품화 자각 부족해

심정선 기자

2016-02-24 12:07

전자 게임의 시초는 '괴짜들이 여유시간을 투자'해 '고도의 지식을 바탕으로 실행한' 해킹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도 게임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 역할 모델 구도가 지금까지 답습되면서 게임은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위주의 영역이 됐다.

물론 요즘은 여성 이용자도 많고 여성을 타겟으로 한 스마트폰 게임도 많이 출시된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개발사들도 여성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가장 열심히 하는 가장 충실한 이용자인 '하드코어 게이머'는 언제나 남성이 다수를 차지한다.

또한 여전히 상당수의 블록버스터 게임이 하드코어 이용자들을 노리고 제작되고 있다. 이런 게임은 이미 사용자와 제작자 그 자체가 특정 종류의 게임 이용자 주체성을 상정하고 다른 소수자들을 여기에 끼워 맞추는 식으로 개발 및 운영된다. 하드코어 게이머 여성들은 일종의 '남성되기' 과정을 마쳐야 게임에 적응할 수 있다.

게임을 오래 즐긴 여성 이용자들이 성별을 밝히길 꺼리거나 자신을 남자라고 소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자석] 게임, 여성 상품화 자각 부족해

지난주 '파이널판타지14'(이하 파판14)의 레터라이브 8화는 이런 국내 게임 업계 상황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파판14'의 여성 이용자 비율이 게임 전체에서 33%를 차지하며 특정 서버에서는 50%를 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 뒤에 진행자는 "우리 게임도 중매 게임이 될 수 있다", "사랑의 짝짓기 이런거라도 오프라인으로 행사를 할까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레터라이브 행사 현장에는 그들의 말대로 많은 여성 이용자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여러 이용자들을 뚝 잘라 단번에 여성 이용자로 묶어냈다. 멀쩡히 함께 콘텐츠를 즐기던 이용자가 여성이라는 분류가 덧씌워지자 같은 이용자가 아닌 짝짓기 대상이 된 것이다.

또한 이후 게임 내 콘텐츠 이용 동향과 관련한 대화에서 최정해 팀장은 레이드 이용 비율이 낮은 원인을 "여성 이용자가 많아서"라고 설명했다. 여성 이용자들은 고난이도 레이드 콘텐츠 보다는 제작, 채집,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며 게임 속에서 조차 성역할을 지정한 것이다.

진행자의 멘트처럼 많은 여성 이용자들이 레터라이브 현장을 방문했다.
진행자의 멘트처럼 많은 여성 이용자들이 레터라이브 현장을 방문했다.

실시간으로 방송된 레터라이브를 접한 이용자들이 성난 반응을 보이자 진행자는 아재 게임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지 여성 이용자를 '연애 대상'으로 격하시킬 의도가 아니었다고 사과했지만 이용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여성 이용자의 비율은 게임을 홍보할 요소가 아니다. 여성 이용자를 단지 남성 이용자를 유혹할 물건으로 상품화하는 행위로 마땅히 비난 받을만한 이유가 된다. 나아가 남성 이용자도 여성 이용자에게 껄덕대기 위해 게임에 접속하는 사람으로 끌어내리는 행위다.

게임에 "여성 이용자가 많다는 수치를 흥미거리로 남성에게 들이대는 것 자체가 여성에게 불쾌한 일이다"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전까지 그다지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남자가 많아서 이 게임할만하다"고 선전하는 게임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여성의 무분별한 성적 대상화는 한국형 모바일 게임이 글로벌에서 잘 안먹히는 이유로도 꼽힌다. 한국에서 만드는 대책없이 헐벗은 여성 캐릭터들이 왜 해외에서 안 먹히느냐. 간단하다. 사람들은 굳이 포르노를 보려고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냥 포르노를 본다. 천박하고 저급하다는 이미지나 뒤집어 쓰고 소모될 뿐이다.

여비서 캐릭터 소개는 신체사이즈를, 남비서 캐릭터 소개는 업무 능력을 소개했다. 현재는 수정된 상태다.
여비서 캐릭터 소개는 신체사이즈를, 남비서 캐릭터 소개는 업무 능력을 소개했다. 현재는 수정된 상태다.

이전 게임의 재미를 위해 성차별 콘텐츠를 넣었다는 '모두의경영'의 경우와도 궤를 같이한다. 게임업계가 얼마나 '젠더 이슈'에 무감각한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겁니다"라고 해서는 안된다. 게임은 이미 일부의 전유뮬이 아닌 여가 시간을 훌륭히 채워주는 놀이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자꾸만 매체에서 부정적으로 다뤄지는 이유도 이러한 급격한 성장에 의식이 따라오지 못한 탓으로 볼 수 있다.

현재를 게임의 문화적 과도기라도 봐도 좋을 것이다. 게임계가 성차별과 성폭력을 잘 포장할 생각은 버리고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경추한 뒤,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할 것이다.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심정선 기자

n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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