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칼럼] 파타피직스와 게임의 역사

2020-07-08 18:56
데일리게임이 2020년 하반기를 앞두고 새로운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개발자이자 게임작가인 동시에 열혈 게이머인 필자 '소금불'이 게임과 관련된 주제를 개발 경험을 살려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

[글='소금불' 김진수 잼아이소프트 대표] 지난해 가을 출시된 닌텐도 스위치 타이틀 '링피트'는 세간에 화제를 모으며 홈트레이닝 유행을 일으켰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되는 가운데 닌텐도 스위치와 '링피트'는 품귀 현상이 벌어져 웃돈을 주고 사야 하는 귀하신 몸이 됐죠. 이 게임을 우습게 알고 덤벼들었다가 혼쭐이 났던 유튜버들의 몸부림 덕분에 개발사는 바이럴 마케팅 효과도 톡톡히 누렸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100만 장 판매를 기록하면서 아직까지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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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피트'는 연예인의 예능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사진 출처=미선임파서블 유튜브).
◆인기 '파타피직스 주술사', 닌텐도

사실 닌텐도는 이전부터 참신한 입력장치를 도입해 체험형 게임을 많이 만들어 왔습니다. 공전절후의 히트를 기록한 '위 스포츠'나 '링피트'의 전신 격인 '위피트'의 흥행도 다 같은 게임명가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필자가 주목한 한가지 재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예술가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용어입니다.

'파타피직스(Pataphysics)'는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로 가득 찬 사이비철학 또는 사이비과학'이라는 뜻입니다. 이 개념이 적용된 사례는 현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괴짜 정치인 허경영의 '롸잇나우' 송은 '사이비 캠페인'에 불과합니다. 젊은이들은 스스로 '혀경영 눈을 바라봐! 난 행복해 질거야!'라는 주문을 걸고, 환갑의 아저씨가 어설프게 읊어주는 랩가사에 맞춰 미친듯이 몸을 흔듭니다. 가짜라는 걸 알면서, 일부러 속아주는 척하며 잠깐 즐기는 거죠(참고: '미디어아트-예술의 최전선' 진중권).

닌텐도 게이머도 비슷한 행동양식을 취합니다. 이용자는 닌텐도 컨트롤러를 손에 쥐고 바보같이 허공에 대고 팔을 휘젓지만, 모니터 화면 속 아바타는 네트 반대쪽으로 정확히 공을 받아 칩니다. 점점 머릿속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닌텐도가 만든 이 '사이비 탁구'에 진지하게 몰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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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위 스포츠' 플레이 장면(사진 출처=IGN).
첨단기술이 깃든 인터페이스 장치를 통해 게이머의 상상과 현실이 하나로 중첩되는 순간은 '파타피지컬(Pataphysical)한 유희' 그 자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몸에 모션 컨트롤러를 붙이고 스쿼트를 하며 몬스터를 때려잡는 게임(링피트)의 흥행도, 곰곰히 따져보면 이런 유희활동에 익숙한 게이머들 덕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는 "미래에 우리는 모두 파타피지컬한 종이 될 것이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예언은 이미 제프리를 모르는 게이머들에게서 실현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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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쇼의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텍스트로 그려진 풍경을 누비는 컨셉트의 작품(왼쪽)과 '링피트'를 이용해 제자리 뛰기를 하며 가상세계를 누비는 여성의 모습.
◆파타피직스와 게임의 발전

이렇듯 게이머들은 과학기술로 빚어진 소품(게임 컨트롤러)을 매개로 해 파타피지컬한 쾌락을 얻습니다. 그 종류는 지난 게임 발전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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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헌트'는 스크린과 연결된 모형 총으로 8비트 그림의 보잘것없는 오리를 쏴 잡는 게임이지만 무려 2000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세웠습니다. 일본의 세가는 운전대 컨트롤러를 도입한 게임(아웃런)을 히트시킨 후, 여러 탈것을 테마로 한 체험형 게임으로 아케이드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세기말, 화살표로 스텝을 유도해 춤을 추게 했던 '댄스댄스 레볼루션(DDR)'은 전 세계에 춤바람을 일으켰죠.

더 나아가 닌텐도는 탁구와 테니스를 모방해 게임의 가능성을 운동의 영역까지 넓혔습니다. 몇년 전, '포켓몬GO'의 유일한 서비스 지역인 강릉까지 달려가 증강현실 몬스터를 잡는 재밌는 소동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대중문화 전반에까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게임들에는 늘 혁신적인 인터페이스의 시도가 따랐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파타피지컬을 가능케 했죠.

◆게임의 미래

이제 직접 머리에 디스플레이까지 씌워 플레이어의 시청각을 통 채로 지배하는 수준까지 갔습니다. '비트세이버'는 최고 인기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 캐릭터와 컬래버까지 하는 등 높은 인기를 얻으며 VR게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VR 대중화라는 꽃도 활짝 피었죠.

VR게임은 완성도나 재미보단 실험적이고 덜 다듬어진 컨텐츠라는 인식이 많았지만, 밸브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사의 유명 IP인 '하프라이프' 신작을 VR게임으로 만들어 거의 만점의 평가까지 이끌어 냈습니다. 이런 성과들 덕분에 점점 VR 장르의 인지도는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실은 이미 수십년 전에 이 아이디어의 창시자가 있었습니다. 괴짜 발명가이자 영화감독인 헤일리그는 1957년도에 센서라마(sensorama)라는 영상 기계를 고안했습니다. 그것은 얼굴을 넣고 시야 전체를 감싸는 영상을 체험할 수 있는 신기한 장치였습니다. 게다가 바람과 향기로써 촉각과 후각까지 자극합니다. 오늘날의 4D 영화를 연상케 하는 것이죠. 물론 비싼 단가 때문에 상업화에 실패했지만 후대의 최첨단 엔터테인먼트 기기에 모티브를 제공한 그의 업적은 미디어 역사에 오래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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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라마'는 오늘날 VR 기술의 어머니일 수도?
이런 기술적 상상력과 더불어 파타피지컬 유희의 가능성도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몇 년 안에 대형 올림픽 경기장에서 모형 총을 쥐고 VR 헤드셋을 쓴 프로게이머들에게 열광하는 팬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직 기기 보급과 3D 멀미가 걸림돌이지만, 늘 그렇듯 기술의 발전은 차츰 이런 장벽들을 하나씩 걷어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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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FPS게임 e스포츠 대회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 날이 머지 않아 올 수도 있다(사진 출처=한국e스포츠협회).
물론 필자는 약간의 우려도 갖고 있습니다. '허경영 송'에 호응한 젊은이들을 진지하게 걱정하는 일부 어른들이죠. 그들은 총 컨트롤러를 쥐고 VR FPS게임을 즐기는 이들을 미래의 폭력범으로 취급하고 제제의 목소리를 성토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묵은 논쟁인 게임의 폭력성 시비는 게임의 발전에 맞춰 다시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감투를 쓴 여의도 어르신의 파타피직스 몰이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웃기는 어른들 때문에 성가신 정책이 뒤따를 수도 있겠습니다.

허나 우리는 한 줄기 '이성의 끈'과 '자랑스러운 파타피지션(pataphysician)'이라는 자부심만 있으면 됩니다. 향상된 기술로 더욱 실감나게 우리를 속일 체험형 게임 신작들을 기다리면서 말이죠.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