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문학개론] 어떻게 한국 PC방은 세계 1위가 됐나

2020-08-25 17:43
2020년 새해를 맞아 데일리게임에서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인문학도의 눈으로 게임과 게임 세상 이야기를 해보는 코너입니다.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온 '찐 게이머' 필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된 게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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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 한국의 PC방은 경이로운 공간이다. 전 세계 게이머가 선망하지만 국내 미디어에선 PC방이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일이 드물다(사진=엠넷 '아이즈원츄 – 환상캠퍼스').
[글=신진섭 게임칼럼니스트]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뛰어난 한 가지를 누군가 묻는다면 PC방이라고 답하겠습니다. 휘황찬란한 불빛의 PC와 키보드, 모퉁이만 돌면 나오는데다가 24시간 연중무휴라는 놀라운 접근성, 1시간에 1000원만 내면 놀 수 있는 가성비 최강의 공간입니다.

외국을 나가보면 김치만큼 그리워지는 게 한국의 PC방입니다. 한 번은 유럽에 가서 컴퓨터를 쓸 일이 생겼습니다. PC 카페가 어디 있다는데 찾기도 어렵고, 막상 들어가 보니 몇 대 안되는 PC를 놓은 구멍가게 수준이었습니다. 속도는 지지부진한데 가격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더군요. 괜히 위키피디아에 'PC방(PC BANG)'이 고유명사로 등록된 게 아니겠죠.

PC방은 분명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관광 책자에도 한국에 들르면 꼭 가봐야 할 곳 중에 경복궁 못지 않게 자주 등장하는 곳이 PC방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인터넷이 더 빠르고, 게임을 더 잘 만드는 나라가 존재합니다. 국민 소득이 더 높은 나라도 있죠. 그렇지만 한국보다 더 나은 PC방이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자 카페에서 게임방으로, '스타크래프트'가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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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찬란한 한국의 PC방. 과거의 담배 전내 나는 음침한 공간을 상상하면 놀랄 수 있다(사진=제닉스).
PC방이 처음부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별볼 일 없었습니다.

1988년 홍익대학교 근처에 생긴 '일렉트로닉 카페(전자 카페)'가 PC방의 조상격이라고 합니다. 카페가 메인이고, PC는 손님에게 제공되던 부가서비스에 불과했죠. 사이버 카페, 모뎀 카페 등 PC통신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 조금씩 생겼고, 1996년이 돼서야 월드와이드웹(WWW) 기반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가 나왔습니다.

PC방의 원년은 1998년입니다. 역사적인 두 개의 사건이 있던 해죠. IMF가 터졌고 '스타크래프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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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블리자드도 IMF 구제신청을 신청한 동방의 나라에서 수백만 장을 팔아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PC방에 처음 간 날을 기억합니다. 친구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는데 엄청나게 재밌다고 그렇게 자랑을 해댔습니다. 뭐가 그렇게 엄청나냐고 물어봐도 그저 엄청나다고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집집마다 PC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죠. 동네에도 PC방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1시간에 2000원이나 받는 만만치 않은 곳이었습니다. 컵 떡볶이가 300원, 슬러시가 200원 하던 때라고 하면 좀 체감이 되시려나요. 정말 큰 맘 먹고 가야하는 고급진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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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PC방으로 달려가는 초글링(사진=OGN).
'스타크래프트'는 그야말로 혁명적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커맨드앤컨커'나 '워크래프트2' 같은 실시간 전략게임이 있었지만 '스타크래프트'와 비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엄청나게 빠른 게임이었고 무엇보다 친구랑 대결하는 근거리 통신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한 번 PC방에 갔다 온 친구들은 '스타크래프트'의 마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필통을 잡고 상상 속으로 마우스 컨트롤을 연습하던 이가 부지기수였죠. PC방 오픈 날이면 동네의 초등학생들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PC방으로 질주하는 '초글링 러시'가 펼쳐졌습니다. 그땐 PC방 오픈 첫날은 공짜가 '국룰'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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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PC방 이름은 스타류와 MMORPG로 양분돼 있었다.
PC방을 차리면 돈을 쓸어 담는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IMF 이후 실직한 예비창업자들이 PC방 사장님으로 빠르게 변신했습니다. 당구장, 기원, 오락실을 동네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도 PC방의 영향이 큽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스타크래프트'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습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MF를 극복하기 위해 2002년까지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깐다는 '사이버코리아21'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이 계획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PC방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때 만들어 놓은 IT 인프라는 온라인게임의 동맥이 됐습니다.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내야하던 PC통신의 종량제 대신 한 달 요금을 정한 정액제를 정부가 고수한 것도 PC방에겐 호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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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PC방 증감 추이(사진=한콘원 '2019 게임백서').
덕분에 1998년 100여개로 시작했던 PC방은 2001년 2만3500여개로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PC방 공급이 늘어나면서 시간 당 1000원으로 가격이 내려갔습니다. 개인 PC 보급, 모바일 시장의 성장, 흡연 규제, 셧다운제 등 수많은 악재를 거쳤지만 지난 2018년 전국의 PC방 수는 1만1800여개에 달합니다. 전성기보다 수가 줄었지만 아직도 인구 대비 PC방 수로 따지면 세계에 비할 데 없이 압도적입니다.

◆코 묻은 돈이 PC방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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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담배연기, 불량학생들의 소굴. 2000년대 초반까지 PC방은 전 세대의 당구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사진=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한국 PC방을 얘기할 때 청소년, 특히 남학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PC방은 남학생들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놀이 문화이자 땡땡이, 즉 일탈의 공간입니다. 한 시간에 1000원에 맘껏 놀 수 있는 놀이터가 PC방 말고 또 어디가 있겠습니까. 당구장과 오락실의 유구한 전통을 PC방이 이어받았죠.

집에 PC가 있다곤 하나 엄마의 눈초리 때문에 장시간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은 못 됐습니다. 학교에서 학원, 도서관으로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에 PC방은 거의 유일한 탈출구가 돼 줬습니다. 성적 줄 세우기에서 패배한 학생들이 대리만족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학교라는 잔혹한 인정투쟁에 장에서 게임 고수라는 별명은 지금이나 예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RPM 120, 빨무 고수라는 별명이 플래티넘, 다이아몬드로 변했다 뿐이지 메커니즘 자체는 20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청소년들이 선불로 1000원, 2000원 내는 '코 묻은 돈'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성인이 퇴근하기 전 오후 3시부터 6시까지의 매출을 책임집니다. 주말이면 부모의 눈을 피해 삼삼오오 친구와 몰려가 세 시간쯤은 거뜬히 책임져주는 업계의 큰손입니다.

PC방이 그나마 잘 된다는 중국, 미성년자는 PC방에 출입할 수조차 없습니다. 왕년에 한국이 영화관을 청소년 유해시설로 지정했듯, 중국에선 학생이 PC방에 가면 징계를 받게 됩니다. PC 온라인게임보단 모바일게임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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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한 PC방. 한인이 밀집해 있는 코리안타운에 가야 해외에서 게임 좀 할만한 PC방을 찾을 수 있다.
미국도 성인이 PC방의 주 타깃입니다. 술을 파는 바에다가 PC를 섞는 형태가 흔합니다.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유흥가인 다운타운에 가기 위해선 도보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방과 후 PC방 방문이 어렵다는 거죠. 치안 문제도 한 몫 하는데요. 과연 다운타운에서 혼자 오후 10시까지 놀고 오겠다는 자녀를 허락할 수 있는 미국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총기 자유화의 나라에선 어려운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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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PC 카페. 3시간에 1만 원 정도 한다.
일본은 PC방 대신 넷카페라는 명칭이 흔한데 게임방이라기보다는 휴게실의 성격이 강합니다. 시간 당 얼마를 내면 만화책, 음료, 샤워 등을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우리처럼 열린 공간이 아니라 부스 또는 방의 형태가 대다수입니다. 게임방보다는 캡슐호텔에 가깝다고 하겠네요.

◆투쟁+관계=전투선비의 나라 한국

싸워서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특성도 한국 PC방을 세계 1위로 올려놓은 요소 중 하나입니다.

외국에선 PC방이 개최하는 e스포츠라는 개념을 찾기 어렵습니다. 서양의 PC 카페는 조용히 업무를 보다 떠나는 고독한 장소죠. 한국인에게 PC방은 전쟁터입니다. 매 판 고성과 욕설이 빗발치죠. 일본의 PC 카페에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게임 차트만 봐도 누군가와 싸우는 게임보단 스토리 위주의 개인적인 게임이 득세하는 나라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게임해야 즐거움이 배가되는 사회성도 한국 PC방의 특수성입니다. 같은 삼겹살이라도 집에서 먹을 때와 고깃집이 다르듯 PC방에서 친구와 게임을 할 때의 맛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밤새 라면을 먹으며 친구와 폐인짓을 하고 있노라면 묘한 전우애까지 싹트곤 하죠.

외신에선 이런 한국의 PC방 문화를 유교적 전통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개인주의가 자리 잡은 서양은 설령 온라인게임일지라도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에 머무른다고 합니다. 자신의 성취나 경험에 집중하는 경향을 띕니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권의 게임 문화는 사뭇 다르죠. 랜선 만남보다는 오프라인 만남이 살갑고 게임하는 맛이 진하죠. 개인플레이보다는 팀플레이를 선호하는 문화적 유전자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게임을 시작한다는 동기 자체가 서양권에서 익숙치 않다고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그래서 가장 세계적인 한국의 PC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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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인기와 특색이면 PC방도 '국뽕'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김치 캐릭터 애니메이션 보다는 나은 듯하다.
PC방의 성공비결은 가장 한국적이었기에 가장 세계적이 됐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장점 뿐 아니라 단점까지 흡수한 진성 K-컬쳐죠.

땅덩어리가 좁았기에 산간벽지까지 촘촘히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부모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유부남들이 아내의 잔소리에서 도망쳐 PC방을 애용습니다. 이들의 수요를 믿고 별다른 기술 없이도 창업하길 원하는 정년퇴직자들이 전국에 PC방을 세웠습니다. 워낙에 PC방이 많다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생존을 위한 스펙업이 강요됐습니다. 옆 PC방보다 한 푼이라도 싸게, 조금이라도 성능이 좋은, 인테리어가 더 나은 PC방만 살아남는 생존 투쟁이 수십 년간 반복되다보니 그야말로 최강자들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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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카페테리아형 PC방은 돈까스만 팔았다. 장족의 발전이다.
점주들은 남는 돈이 얼마 없다보니 부가 수입으로 눈을 돌렸고, 그 결과 PC방에 음식을 곁들인 카페테리아형 PC방이 주류가 됐습니다. 식음료 판매가 PC방 전체 매출의 22% 가량을 차지합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음식이 자리로 배달되는, 24시간을 머물러도 모자람이 없는 한국형 PC방이 걸어온 길입니다.

만약 한국이 콘솔게임 강국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미국과 일본이 그렇듯 게임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색채가 더 강한 문화가 됐을 겁니다. 시작점이 달랐습니다. 미‧일의 게임이 혼자 있는 '방'에서 시작했다면 한국은 '왁자지껄한 PC방'부터 출발했습니다. 결핍과 단점 때문에 최강이 된 PC방이라니, 꽤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