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칼럼] '슈퍼마리오'에서 '폴가이즈'까지, 플랫포머의 역사②

2020-10-01 19:37
데일리게임이 2020년 하반기를 앞두고 새로운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개발자이자 게임작가인 동시에 열혈 게이머인 필자 '소금불'이 게임과 관련된 주제를 개발 경험을 살려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글='소금불' 김진수 잼아이소프트 대표]

8.비탄에 젖은 과학자의 미몽(迷夢)을 담은 플랫폼 게임, '브레이드(Braid. 2008년)'

'브레이드'는 시간을 제어해 퍼즐을 풀며 스테이지를 진행하는 게임입니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 남자의 평범한 스토리 같아 보이지만 그 속엔 심상치 않은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발매일(히로시마 원폭)부터 심상치 않은 이 게임은 핵 과학자의 후회와 뒤틀린 기억들이 은유적으로 스토리와 게임의 룰에 녹아 있습니다. 특히 반전이 담긴 엔딩 연출은 전율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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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풍의 멋진 배경과 음험한 분위기의 OST도 큰 사랑을 받았다('브레이드', 조나단 블로우).
여러 게임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비평가들에게 높은 평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게임의 진가를 맛보기 위해 적잖은 수고(진엔딩)를 겪어야 했던 탓에, 중도하차한 일부 플레이어들에게 '지루한 마리오 짝퉁'이라는 오해 섞인 평가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출시 후 몇 달간 큰 우울감에 시달렸다는 개발자(조나단 블로우)의 회고도 있었습니다. 여러 잡음도 있었지만 플랫폼게임에 시간을 조절하는 권한과 심도 있는 내러티브를 부여해, 게임의 예술성에 대한 가능성을 한껏 보여준 이 작품은, 분명 게임 역사에서 진보적인 성취를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9.미트보이의 피맺힌 여친 구출기, '슈퍼 미트보이(2008년)'

'브레이드'와 더불어 인디게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게임입니다. 고난이도 플래시게임이 유행할 당시 등장한 이 게임은 콘솔(Xbox Live Arcade)로도 등장해 큰 히트를 쳤습니다. 귀여운 비주얼을 띄고 있지만, 게임성은 굉장히 하드코어합니다. 단 한 번의 컨트롤 미스로 피와 살점이 갈리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자세를 고쳐 앉고 게임화면에 집중하게 됩니다. 마치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콤한 맛에 눈물이 찔끔 나오지만 자꾸 손이 가는 매운 떡볶이 같은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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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의 모티프를 아는 당신은 아재('슈퍼 미트보이', 팀미트).
개발자는 이용자의 손에 연약한 주인공을 쥐어 주고, 꼼꼼하게 배치된 함정과 지형지물을 통해 플레이 요령을 하나씩 익히길 의도했습니다. 이용자에게는 굉장히 엄격한 처사지만 결과적으로 멋진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됐습니다. 덤으로 괴팍한 아트 스타일로 유명한 디자이너, 애드먼드 맥밀런의 익살맞은 캐릭터들과 아재 게이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명작게임의 패러디 연출도 꽤 괜찮은 볼거리입니다.

10. 도굴꾼으로 이직한 울트라 마라토너의 액션, '템플런(2011년)'

10여 년 전 아이폰 등장 후 스마트폰이 한참 보급되던 시절, 어플리케이션 흥행의 중심에서 우뚝 섰던 런닝(Running)류 게임입니다. 유물을 훔치고 악마를 피해 전력 질주하는 이 게임은 중독성 있는 재미로 많은 엄지족의 자투리 시간을 지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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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꾼의 기본소양은 강철 터보엔진같은 심장과 건실한 하체('템플런', 이만지 스튜디오스).
가장 큰 장점은 세로로 쥐는 스마트폰 사용습관을 배려한 종스크롤 게임방식과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터치 슬라이드, 기울임 센서)를 적극적으로 채용한 것입니다. 기존의 게임패드 방식을 버리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적용한 덕분에 비게이머가 주를 이루는 스마트폰 이용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결국 '템플런'은 큰 성공을 거뒀고, 런닝게임은 스마트폰에서 흥행을 보장하는 장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물론 숱한 아류작을 양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11. 차원전환에서 꽃 피는 착시의 묘미, '페즈(2012년)'

3D 축을 돌려 착시를 이용해 길을 찾는 게임으로, 2D 세계의 주인공이 신비한 힘을 지닌 모자를 쓰고 모험을 하는게 주요 스토리입니다. '일본겜은 쓰레기'라고 독설을 펼쳤던 '페즈' 감독, 펠피쉬의 거친 입담과 대조적으로 매우 예쁘고 산뜻한 퍼즐 액션게임으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닌텐도 키드였던 펠피쉬는 '출시 좌절=극단적 선택'이라는 섬뜩한 각오를 가지고, 완벽한 게임 디자인을 위해 숱한 연기도 마다 하지 않으며 게임 개발에 임했습니다. 특히 '테트리스'를 모티프로 한 아름다운 맵 디자인은 그의 집념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모 공개 직후 큰 반향을 이끌어내면서 일약 게임업계의 스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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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힘이 깃든 페루의 전통모자를 쓴 주인공('페즈', 폴리트론 코퍼레이션).
참고로 차원술을 이용한 슈퍼 '페이퍼 마리오(2007년)'와 도형을 돌려 길을 맞추는 '무한회랑(2008년)', 그리고 우아한 비주얼로 큰 인기를 이끌었던 '모뉴멘트 벨리(2014년)'도 '페즈'와 비슷한 메커니즘의 게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네 작품을 비교해보면서 미묘한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으니 플레이 영상을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12. 크리에이터가 되는 기쁨, '마리오 메이커(2015년)'

이젠 플랫폼 게임은 직접 만들어서 갖고 노는 친숙한 장르가 됐습니다. 닌텐도는 간편한 제작 인터페이스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게임 개발에 서툰 일반 게이머들을 배려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맵 공유 옵션과 소셜 기능도 충실히 구비해, 커뮤니티 활성화와 게임 스트리머들을 전략적으로 유도했습니다. 그 결과, 적극적인 이용자들의 SNS 활동 덕분에 바이럴 마케팅이 활발히 이뤄져 다른 시리즈 못지않게 큰 히트를 누렸습니다. 게임 개발 입문자에게도 공부가 될 만한 타이틀이니 꼭 한 번 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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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툴까지 재밌어 보이게 만드는 닌텐도의 기획력은 무시무시할 정도(닌텐도 유튜브).
13. 최첨단 콘솔을 타고 시공을 초월하는 재미, '라챗앤크랭크 리프트어파트(예정)'

저장장치의 속도를 특화시킨 차세대 게임기, PS5의 파워 덕분에, 이제는 순식간에 디자인 애셋 로딩과 스테이지 전환이 가능해졌습니다. 3인칭 3D 플랫폼 액션게임, '라챗앤크랭크'의 데모 영상은 정신없는 게임월드의 변환과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로 많은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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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5의 설계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게임('라챗앤클랭크', 인섬니악).
하드웨어의 제약으로 스테이지와 스테이지 사이는, 정적감이 흐르는 까만 로딩화면으로 간격을 두는 게 일반적입니다. 개발사는 그런 공식을 비웃듯이, 데모영상 내내 초고속 맵전환 연출을 뿌려댑니다. 구름과 풀밭을 색깔만 바꿔 부족한 사양을 극복했던 초대의 '슈퍼마리오'와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수준입니다. 플랫폼 게임의 기술적 진화가 어디까지 왔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14.우당탕탕 버라이어티 온라인 운동회, '폴가이즈(2020년)'

이 글의 마지막 주인공인 '폴가이즈'는 온갖 함정이 세팅된 플랫폼을 뚫고 최후의 1인이 되는 게 목적입니다. 배틀로얄 장르의 매너리즘을 타파하고 케주얼한 게임성을 선보인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출시 1주 만에 스팀에서 200만 장 판매를 기록하고, 트위치의 총 시청량에서 2300만 시간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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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과 더불어 상대방을 밟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비정함도 필수다. 무한경쟁 시대, 또 하나의 씁쓸한 단상을 보는 느낌도 묘미이다('폴가이즈', 미디어토닉).
게임 영상에서 '출발 드림팀'의 컨셉트를 떠올리는 국내 이용자들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본 예능 프로그램 '타케시의 성'에서 영감을 받은 리드 게임 디자이너(조 왈시)의 기획 덕분이죠.

사실 이 게임이 처음부터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출시 전 개발사는 10곳의 퍼블리셔들 사이를 헤매면서 개발자금을 어렵게 마련하기도 하고, 게임을 론칭하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후 출시돼 큰 흥행을 일궜고, 최근 2500만에 달하는 플레이스테이션 이용자도 확보하면서 대박행진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마치며

8비트 컬러로 그려진 배관공의 모험부터 랜선 친구들과 벌이는 운동회까지, 여러 게임기법과 조화를 이루며 변주되고 발전한 플랫포머 장르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플랫폼 게임 메이커로서, 한 몫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필자는 이 장르의 팬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플랫폼 게임 포에버!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