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100년](42)마라톤 이야기④]'마라톤 왕' 김은배(중)

2020-10-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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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마라톤대표로 선발된 김은배, 츠다와 권태하(오른쪽부터)
권태하, 조선 예선에서 혜성처럼 등장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을 앞두고 조선예선전이 시작됐다. 우리 손으로 만든 조선체육회가 아닌 일본인 단체인 조선체육협회 주관 대회였다. 국권을 빼앗긴 설움이 스포츠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1932년 5월 8일 경성운동장에서 제10회 로스앤젤레 올림픽 조선 1차 예선대회 겸 조선육상경기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이날 비가 잠깐 뿌린 뒤에 열린 이날 5000m에서는 손기정(양정고보)이 16분03초2로 종전 조선최고기록(16분5초)을 1초8 단축하는 신기록을 세우며 일본에서 열리는 2차 예선전 진출을 확정지었다.

비공인세계신기록 보유자로 ‘마라톤 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김은배는 대회 전날 밤에 일본체육협회가 “김은배 마라톤 기록은 지난해 세운 기록을 인정한다.”고 발표해 자동적으로 일본 2차 예선 진출이 확정됨에 따라 마라톤에는 출전하지 않고 10000m에 나서 손기정과 겨루었다.

이때까지 손기정은 마라톤에는 뛰지 않았고 중장거리에 집중할 때였다 당시 김은배와 손기정의 레이스 장면을 두고 신문에서는 "불보다 더 뜨거운 접전을 연출했다"고 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경성운동장 트랙코스가 500m여서 이 트랙을 20바퀴 도는 10000m 경기에서 김은배와 손기정은 선두 다툼을 벌이다 15바퀴째에 손기정이 5m 가량 앞서 나갔다. 그러나 16바퀴에 들어 김은배가 다시 선두를 뺏아 어깨를 나란히 하며 2바퀴를 더 돈 뒤 라스트에 들어가 스피드를 내 33분38초2로 우승하고 손기정은 5m 차로 2위에 그쳤다.

김은배가 빠진 마라톤에서는 이때까지 조선에서는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권태하가 1위를 차지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권태하는 휘문고보에서 리즈메이칸중학으로 전학한 뒤 메이지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따라서 국내 대회에는 출전할 기회가 없었던 것.

권태하는 하마터면 이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뻔했다. 권태하는 대회 이틀 전인 5월 6일 오후 1시쯤 황금정 네거리(현 을지로)에서 훈련을 하던 중 일본인 순사로부터 정지신호를 무시했다며 구타를 당한 것. 이 소식을 듣고 조선체육협회가 곧장 경찰서를 방문해 항의를 했지만 이미 권태하는 온몸에 이곳저곳 피멍이 들고 무엇보다 다리 부상까지 당해 2주일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권태하는 놀랍게도 부상을 무릅쓰고 대회에 참가해 코스를 잘못 알아 약 150m를 더 뛰고도 2시간35분12초로 1위를 차지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권태하 김은배, 마라톤 일본 최종 예선에서 1, 2위
제19회 전일본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겸한 로스앤젤레스올림픽 파견을 위한 마라톤 최종 예선전은 1932년 5월 25일 오후 2시30분에 열렸다. 비가 내려 컨디션이 좋지 못한 가운데 열린 이날 레이스는 말 그대로 조선과 일본의 결전장이었다.

일본에서는 1차 예선에서 세계기록을 세운 야나기(矢萩)와 다카하시(高橋), 2시간30분벽을 돌파했다고 해서 한동안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스즈끼(鈴木), 일본기록보유자인 구스모토(楠本), 로스앤젤레스 마라톤 코스를 사전 답사하고 돌아온 츠다(津田) 등을 우승 후보로 꼽았다.

하지만 일본의 이런 기대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권태하가 2시간36분50초로 1위, 김은배가 2시간37분59초로 2위, 이귀하(전수대학)가 2시간39분49초로 5위에 올라 마라톤 왕국 조선의 위세를 과시하며 일본의 콧대를 완전히 눌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열띤 접전을 벌인 이날 레이스는 초반에 구스모토가 선두에 나섰고 이귀하, 츠다, 김은배, 권태하가 2그룹을 형성했다. 반환점에서는 다카하시가 선두로 나오고 그 뒤를 김은배와 권태하가 뒤따랐다. 후반까지 다카하시가 선두였지만 권태하가 따라붙기 시작했고 그 뒤를 김은배가 바짝 뒤쫓아 순식간에 역전을 시키고 말았다.

이날 마라톤에는 양정고보를 중퇴하고 일본에서 고학을 하던 남승룡도 참가해 김은배의 페이스를 뒷받침하며 역주했으나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 경기가 끝난 뒤 일본육상경기연맹은 3위를 한 츠다(2시간38분4초)를 선수 겸 코치로 임명하고 권태하, 김은배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 대표로 선정했다.

무엇보다 조선에서 열린 1차 예선전 직전에 일본 순사의 구타로 다리 부상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하는 투혼을 발휘했던 권태하는 일본 2차 예선을 앞두고는 지독한 감기몸살에다 일본 순사에게 당한 부상이 재발하는 바람에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하고도 또다시 우승함으로써 조선인의 불굴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