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45. 이강철, 조계현의 새옹지마(塞翁之馬)

2020-10-27 07:21
이강철과 조계현은 1989년 연봉 1천2백만원을 받고 프로야구 타이거스에 나란히 입단했다. 팀의 희망에서 버팀목으로 함께 한 그들은 그러나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프로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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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현과 이강철은 다른 듯 같은 첫 3년을 보냈다. 이강철은 첫 해 15승, 90년 16승, 91년 15승 등 3년간 46승(90년 16승, 91년 15승)을 기록했다.

첫 해 15승이면 신인왕을 바라볼 수 있는 수준. 하지만 태평양의 ‘중고신인’ 박정현이 탈삼진 116개, 방어율 2.15를 작성하며 19승을 올리며 가지고 가버렸다. 박정현은 그 전해 입단했으나 거의 던지지 않아 신인왕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계현은 89년 7승에 이어 90년 14승, 91년 9승 등 3년간 30승을 했다.

46승대 30승. 성적이 곧 돈인 프로야구의 세계이니 이강철의 연봉이 조계현보다 한푼이라도 많아야 했다. 그러나 둘의 1992년 연봉은 똑같이 2천3백40만원이었다.

연봉협상으로 16승의 확실한 차이를 극복한 조계현은 93년 17승, 94년 18승을 몰아친 후 95년 보너스 포함, 8천6백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강철은 12승과 10승으로 변함없이 자기 몫을 하며 6년 통산 85승을 작성했다. 조계현의 75승보다 10승 많았지만 그의 연봉은 7천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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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9승을 올린 조계현은 96년 마침내 억대 연봉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강철은 억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강철은 2년 연속 10승을 거둔 후인 97년에야 억대 연봉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강철에게 더 억울한 일은 98년 초 발생했다.

8승을 올린 조계현은 삼성으로 이적하며 1억1천8백만원의 연봉을 받았지만 타이거스에 그대로 남은 이강철은 11승을 올렸음에도 1억1천만원을 받았다.

성적 따로, 연봉 따로의 이강철과 조계현. 늘 눌려 지내던 이강철은 99년 12월 처음 반전의 무대에 섰다. 부상으로 99년 시즌을 개점 휴업, 연봉 삭감 대상이었으나 FA(자유계약)제도가 시행되면서 그 동안의 손해를 단숨에 보충했다.

타이거스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그를 삼성이 극진히 모셨다. 옵션이 있긴 했으나 3년 계약금, 연봉 총액 8억원이고 2000시즌 8승 이상을 하면 2억5천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한 해 푹 쉬었는데도 이 정도 조건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반면 조계현은 급전직하했다. 이강철처럼 똑같이 FA자격을 획득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억대 연봉을 받고도 99년 시즌 12경기에서 3패(방어율 11.51)를 기록한 그를 누구도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삼성 역시 조계현에게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자유인’으로 내몰았다. 결과적으로 이강철을 잡으면서 조계현을 방출한 셈이 된 것이었다.

11년만의 대역전. 승부가 끝나는 듯 했으나 그들의 야구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특급 대우을 받은 이강철은 장밋빛 미래가 펼쳐졌음에도 그것을 잡지 못했다. 2000년 시즌 이강철은 부상의 악령을 떨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1승 4패에 평균 자책점 7.30이었다.

조계현은 기사회생했다. 김인식 감독의 배려로 어렵사리 두산에 터를 잡고 재기의 길을 개척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가능성을 보인 조계현은 결정적일 때 빛을 발휘, 다시 억대 연봉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두산의 한국시리즈 선봉장이 된 그는 3연패의 위기에 빠진 두산의 4차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만 36세 6개월, 역대 한국시리즈 최고령 승리투수의 기록이었다. 이듬해 전천후 투수로 뛴 조계현은 2001년 기어코 한국시리즈 우승의 맛을 다시 본 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강철은 2001년 7월 30일 2억 원의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타이거즈로 돌아왔다. 노쇠의 기미가 역력했지만 성실한 이강철은 험한 일을 마다않으며 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셋업맨이든 마무리든 가리지 않고 나선 그는 2002년 66경기 105이닝, 2003년 67경기 68이닝, 2004년 79경기 85이닝을 뛰며 3년간 17승 33세이브 29홀드를 작성했다. 평균 자책점도 수준급인 2.79였다. 불혹의 40세 투수까지 바라보았던 이강철은 그러나 막판 ‘마당쇠’노릇에 힘이 부쳐 2005 시즌을 끝내고 은퇴했다.

그리고 십수년 지도자의 길. 둘은 엇갈려 돌아다니며 코치를 하고 감독대행까지 하며 감독수업을 했다. 조계현은 기아, 삼성, 두산, 삼성을 두루 돌아다녔다. 이강철은 기아, 넥센, 두산 등지에서 코치를 지냈다.

어느 새 50줄을 넘긴 그들. 조계현은 2018년 기아 단장이 되었다. 이강철은 2019년 KT위즈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10월 26일 KT를 창단 후 처음 포스트시즌에 올린 이강철은 1년이나 일찍 재계약을 체결했다. 3년 20억원.

야구인생 30여년. 그래도 그들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