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강현종 "한국 e스포츠와 LCK 새 비전, 함께 그리고 싶다"

2020-11-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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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종 감독은 대한민국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의 1세대 감독이다. LoL이 한국에 정식으로 서비스되기도 전에 북미 서버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선수들을 하나둘씩 모아 MiG라는 게임단을 꾸렸고 당시 구성원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LoL 업계에서 전설이라 불리면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강현종 감독 또한 MiG의 성공 사례를 발판으로 CJ 엔투스, 아프리카 프릭스, 락스 타이거즈, 한화생명e스포츠 등 여러 팀을 지휘하며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했고 길이 남을 성과들도 만들어냈다.

강 감독은 최근까지 일본 팀인 데토네이션 포커스미를 지도했다. 일본 리그(이하 LJL) 스프링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서머에서는 뒷심이 빠지면서 월드 챔피언십까지는 나가지 못했다.

지난 11월 14일 결혼식을 올린 강 감독은 팀에서 배려해준 덕분에 한국에 들어와서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었지만 팀 성적이 막바지에 좋지 않았던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Q 최근에 데토네이션 포커스미와 결별했다는 소식이 SNS로 전해졌다.

A 그렇다. 21일로 넘어오는 시간에 계약이 종료됐다. 팀이 나를 위해 정말 많이 배려해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 마무리했다.

Q 외국 팀을 맡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A LoL 리그가 열린 이후 계속 한국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2019 시즌을 마친 뒤 외국팀을 지도해보는 것이 나에게 새로운 계기가 될 것 같아서 도전장을 던졌는데 데토네이션 포커스미가 받아줬다. 한국과 일본이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나 또한 매력을 느꼈다.

Q 외국 팀을 지도해보니 어땠나.

A 올해는 매우 특이한 상황이었기에 일반화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에 도착해서 팀을 지도하기 시작한 시점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일본도 상당히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렸기에 연습실과 숙소에서 거의 살았고 식사는 숙소 근처의 라면집, 돈가스집, 편의점에서 해결했다. 이전에 외국에서 생활했던 선수, 지도자들 사람들이 누렸던 여유는 내겐 거의 없었다.

Q 일본이 LoL 메이저 지역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

A LJL에서 활동하고 있는 팀들의 평균적인 실력은 한국의 챌린저스 코리아 수준이다. 데토네이션 포커스미나 이번에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 출전한 V3 e스포츠와 같은 팀들은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에서 경쟁을 펼치면 중하위권 정도라고 본다. 일본이 경쟁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선수층이 얇기 때문이다. 리그가 크지 못했기에 발생하는 일이다. 일본 팀의 구성을 보면 한국인 지도자 1~2명과 한국인 용병 선수 1~2명이 고정적으로 들어가 있다. 한국 지도자, 선수들의 노하우를 배우면서 성장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지만 그만큰 선수 풀이 넓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Q 외국 팀을 지도하면서 결혼 준비까지 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A 데토네이션 포커스미가 나를 위해 정말 많이 배려해줬다. 사실 일본 팀을 가기로 결정한 것은 결혼식 때문이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결혼식 날짜를 잡았는데 그 때만 해도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기기 전이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결혼식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이 사태가 터지면서 일본에만 있어야 했다. 결혼식 날짜를 최대한 늦추고 일에 매진했고 그 결과가 스프링 우승이었다. 서머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팀에 이야기했더니 "한국에 들어가서 온라인으로 선수들을 지도해도 좋다"라고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그 덕분에 11월 14일에 결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팀 성적이 마지막에 떨어져서 죄송한 마음도 크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데토네이션 포커스미에 감사드린다.

Q 새로운 팀을 알아보고 있나.

A 2021년을 함께 할 팀을 찾고 있는데 쉽지 않다. 1년, 1년이 달라지고 있는 e스포츠 업계이지만 2020년 1년은 상당히 많은 것이 변했다. 특히 프랜차이즈 심사 등이 진행되면서 팀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 시기를 일본에서 보내다 보니 솔직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Q 어떤 면에서 달라진 것 같은가.

A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에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가 바뀐 것과 같다고 본다. 지난 페이즈에서 타노스가 핑거 스냅으로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상황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아예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LCK도 마찬가지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팀들이 운영될 것이고 리그 또한 큰 변화를 경험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승강전이 폐지되면서 게임단을 운영하는 방법이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2021년에 롤드컵에 진출할 생각을 갖고 있는 팀은 큰 돈을 들이면서 시장에 나온 FA 선수들을 끌어 모으려 하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팀을 꾸리겠다고 결정한 팀은 서서히 끌어 올리는 방안을 택할 수 있다. 승강전이 존재했을 때 게임단은 벼랑 끝 싸움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하위권에 머무르더라도 낭떠러지 앞에 서있는다는 느낌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리그가 느슨해질 수도 있고 팬들로부터 받는 질타는 더욱 커질 것이다. 승강전이 사라지면서 챌린저스 코리아도 없어졌고 향후 2군 리그 등이 도입될 수도 있다. 또 선수 육성을 위한 아카데미 사업 등을 게임단이 앞장 서서 추진할 수도 있다. 많은 것이 바뀌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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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엔투스 시절 강현종 감독.
Q 새로운 팀을 갈 때마다 2개 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아마추어 선수 육성과 발굴에 힘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걸로 알고 있다.

A MiG 프로스트와 블레이즈를 함께 운영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사비로 팀을 운영했기에 두 팀 선수들이 모두 숙소에 있지는 않았지만 서로 연습 상대가 되어주면서 성장했다. 프로스트가 먼저 유명해졌지만 블레이즈도 곧바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우승까지 해냈다. 그 시스템을 받아줄 후원사를 찾다가 아주부를 거쳐 CJ가 팀을 운영하겠다고 했을 때에는 3군까지 둔 적이 있다. 프로스트와 블레이즈가 경기를 뛰고 있는 동안 맹훈련하면서 출전 가능 날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이 있었는데 '비디디' 곽보성과 '고스트' 장용준이었다. 만 17세가 넘어야 공식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는 라이엇게임즈의 규정을 충족시킬 때까지 CJ 엔투스 3군에서 훈련하고 있던 그들이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Q 곽보성, 장용준과 같이 훈련하던 3군 선수는 또 누가 있나.

A 톱 라이너 '헬퍼' 권영재, 정글러 '트릭' 김강윤, 미드 라이너 '비디디' 곽보성, 원거리 딜러 '고스트' 장용준, 서포터 '맥스' 정종빈이 3군이었다. 이 선수들이 장래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주도적으로 영입했고 CJ 엔투스 사무국은 내 생각을 받아줬다.

Q 어떤 생각으로 이 선수들을 뽑아서 훈련시켰나.

A 유럽 축구에는 유스 팀 시스템이 있다. 잘 나가는 축구 선수들 중에는 바르셀로나 혹은 맨체스터 유니아티드의 유스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e스포츠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저 라인업을 구축했다. 테스트 과정에서 '어린 선수가 저렇게 좋은 실력과 판단력을 갖고 있을 수 있구나'라고 놀란 적도 있다.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과 기량을 겨뤄도 개인기에서는 밀리지 않더라. 그래서 일찌감치 팀으로서의 경험을 심어주고 팀게임에 대한 방향을 잡아준다면 대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 CJ 엔투스라는 이름으로는 저 조합이 큰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권영재와 정종빈은 지도자로, 김강윤은 유럽 진출 성공 1세대로, 곽보성은 LCK 우승을 달성했고 장용준은 롤드컵 우승을 차지했으니 성공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유스만으로 5명의 백업 팀을 짜겠다고 결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 때만 해도 2개 팀이 하나로 합쳐져야 하는 시점이었고 6~7명으로 1군을 구성하느라 정신 없을 때였다. 소위 식스맨 시스템인데 이 체제는 한계가 있다. 6~7명으로 스쿼드를 구성하면 연습 경기를 할 때 1~2명은 쉬어야 한다. 솔로 랭크만 해서는 팀 게임이 갖고 있는 운영과 호흡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유스를 키우더라도 꼭 5명이 있어야 한다고 사무국에게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이러다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1군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란데 다른 쪽에 정신 팔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1, 2군이 같이 커야만 팀 전체가 탄탄해진다라는 지론을 바꿀 생각은 없다. 1군은 2군의 롤모델이 되어야 하고 2군은 1군을 위협할 정도로 경쟁력을 키워야만 한다.

Q 이번 시즌 유독 감독들이 FA 시장에 많이 나왔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감독직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A 누구보다 그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김정균 감독, 최우범 감독 등이 자리를 잡았고 롤드컵 우승을 일궈낸 이재민과 양대인 조합은 T1에서 감독과 코치 자리를 바꾸면서 합류하는 등 여러 소식을 들었다. 팀이 차기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과 코치의 생각이 사무국과 잘 어우러져야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내가 시장에 나온 시점이 늦었을 수도 있지만 '감독을 꼭 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Q 지금까지 10년 동안 지도자로 생활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선뜻 이야기할 수 있나.

A 아까 언급했던 것처럼 LCK 프랜차이즈 도입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가 바뀐 것으로 봐야 한다. 이전까지는 매 시즌 성적에만 연연해야 했던 팀들이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실천하는 과정으로 변모한다는 뜻이다.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기 위해 사이즈를 재고 그 옷에 맞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감독이 아니라도 이 과정을 함께 하고 싶다. 지도자 역할이어도 좋고 사무국이어도 좋다. LCK가 새로운 장을 열고 새로운 비전을 그리는 과정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Q 사무국 역할을 해본 적은 없지 않나.

A 스타크래프트 시절도 그랬다고 들었는데 LoL 리그가 태동할 때에도 감독은 전천후 해결사 역할을 해내야 했다. 선수들이 훈련할 때에는 지도자 역할로 피드백을 해야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후원사 영입을 위해서 영업 사원처럼 뛰어야 했다. 지나가다가 숙소로 쓸 만한 건물이 나오면 근처 부동산에 가서 구조와 시세를 알아보기도 했다. 사무국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MiG 시절에는 직접 발로 뛰면서 알아봤고 최근에 한화생명e스포츠의 캠프원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는 사무국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선수들에게 최적화된 숙소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외국 디자인 회사와 접촉해서 색다른 디자인을 뽑아내려고 추진한 적도 있다(실제로 강현종 감독의 핸드폰에는 그 때 유니폼 디자인 시안과 실착 사진이 담겨 있다.)

Q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다.

A CJ 엔투스가 용산구 이촌동에 숙소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스타크래프트, 스페셜포스 팀이 숙소를 쓰고 있었고 LoL 팀까지 들어가서 함께 살았다. 숙소와 연습실 임대료에 들어가는 예산이 상당히 비쌌는데 넓지 않았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경기도 고양시 쪽에 넓으면서도 임대료가 싼 곳이 많은 것을 알았고 사무국에게 건의해서 이전한 적이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회사에 냈다. 팀과 관련해서는 식스맨 시스템 도입, 팜 시스템 구축, 연습실과 숙소의 분리, 라커룸 운영 등 운영과 직접 관련된 사항부터 팀의 추구해야 할 방향, 대전제 등도 내놓은 적이 있다.

Q 당시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앞서간 생각들도 있었다.

A 앞서 갔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같이 추진했다면 더 빨리 바뀔 수 있었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의 해외 유출부터 막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4년 롤드컵이 끝난 뒤로 삼성 갤럭시 화이트와 블루가 감독, 코치, 선수 모두 빠져 나갔을 때 대대적인 시스템 정비가 필요했는데 그 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중국, 북미가 이 정도로 자본력을 투입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한국도 대비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 만에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자생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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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생명e스포츠 시절 강현종 감독.

Q 돌이켜 보면 지도자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기록들은 다 갖고 있다. 월드 챔피언십 결승 진출부터 승강전 경험까지, 게다가 외국 팀 지도자까지, 지도자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A 한국 팀으로는 처음으로 롤드컵 결승까지 올라갔고 2019년 서머에는 승격강등전에서 살아 남기도 했다. 2020년에는 일본 팀을 지도하기도 했다. 성적으로 봤을 때에는 LCK 안에서 고점부터 저점까지 모두 겪었고 LJL에서 우승도 해봤다.

그것보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팀까지 지휘했다는 점이다. 이것까지 경험한 지도자는 전세계적으로 흔치 않을 것이다. MiG 시절에는 사비를 들여가면서 좁은 숙소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했고 CJ와 한화생명과 같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팀에 들어가서도 생활해봤다. 재정적인 최저점과 최고점을 경험했다는 것도 색다른 이력이다.

아주부 프로스트가 2012년 롤드컵 결승전을 치른 뒤 개인적으로는 하락세를 이어갔다고 판단하고 있다. CJ 엔투스 시절 재도약을 노렸지만 쉽지 않았고 아프리카 프릭스와 락스 타이거즈를 맡았을 때에는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로 라인업을 꾸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시즌 문턱까지는 항상 팀을 올려 놓았다. 고효율까지는 아니지만 낮은 비용을 들여 그 비용으로 낼 수 있는 한계치까지는 만들어냈던 것 같다.

Q 그런 의미에서 한화생명e스포츠에서 겪었던 승강전이 감독 경력에서 지우고 싶었던 기록일 것 같다.

A 2011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해오면서 선수들과 숙소에서 함께 지냈다. 2015년 이후부터 감독과 코치들이 하나둘씩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면서 지도자들이 출퇴근하는 사례가 늘어났고 미혼이지만 숙소 근처에 원룸을 얻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나는 한 번도 선수들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다. 연습실에서는 감독님으로, 숙소에서는 형처럼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번아웃이 찾아왔는데 그 때가 2019년 서머였던 것 같다. 매년 포스트 시즌 문턱에서 좌절했고 2019년 스프링에서도 9승9패를 달성했지만 세트 득실이 부족해서 6위에 머물렀다. 서머를 앞두고 내가 정신을 차리고 선수들을 독려해서 달려 나갔어야 하지만 스스로도 지쳤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면 안되지라고 채근하면서 정신 차려보니 승강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나마 살아 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겼다.

Q LCK를 떠난 것도 그 때문이었나.

A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심한 LCK에서 계속 생활하다 보니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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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직군은 없나.

A 직군은 없고 목표는 있다. 크게는 한국 e스포츠 업계, 작게는 LCK 프랜차이즈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도자, 사무국, 아카데미 등 어떤 일을 맡아도 된다. 새롭게 도전하는 일에는 전혀 두려움이 없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거부감 또한 없다. 이 일이 팀을 위한 일이고 나를 위한 길이면 뚜벅뚜벅 걸어서 길을 열었다.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코로나19로 걸음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에 와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관계자들도 많이 오셨고 나와 인연을 맺었던 선수들도 대거 와서 축하해주셨다.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건이 되는 대로 인사드리겠다. LoL은 합이 잘 맞아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임이다. 합을 잘 맞추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갈고 닦고 있다. 강현종이라는 퍼즐 조각을 원하는 팀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달라. 어떤 일이든 해내도록 노력하겠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